그 후, 며칠이 지났다. 나는 경아씨에게 자주 메세지를 
보냈지만 그녀는 드문드문 답장을 했다. 그래도 이를 통해
우리의 관계는 서먹서먹하기보다 조금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오늘은 즐거운 토요일. 하지만 하늘에 짙게 드리운 먹구름과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별로 달갑지 않다. 




 "경아씨는 뭘하고 있으려나.."




 꾹.




 핸드폰을 켜고 현재 시간을 보았다. 오후 6시 30분. 어차피
오늘은 주말이니 평일 알바를 하는 그녀는 집에 있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에게 지금 뭐하고 있어요? 라며 문자를
보냈다. 10분.. 20분.. 30분.. 1시간. 역시 그녀는 메세지를
잘 받지 않는다. 나름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나만 그런거
였나? 나는 울리지 않는 휴대전화를 한쪽 주머니에 넣고,
지갑을 가지고 일어났다.




 "오늘같은 날엔 맥주 한잔 해야지"




 비가오는 날엔 맥주를 마신다. 20살 때 이후로 어쩌다 생긴
버릇이다. 그녀와 함께라면 더욱 좋겟지만.. 잠깐! 그녀가
술을 마실 줄 알았던가? 나는 그녀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




 딸랑.




 집에서 나와 편의점 안으로 들어왔다. 역시 그녀는 없다.
알면서도 무슨 기대를 하는건지.. 나는 맥주를 한 캔 집어 
카운터 위에 올려두고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그런데
앞에 있는 점원에게서 예상치 못한 말이 들려왔다.




 "초면에 이런 말 하기 좀 그렇네만. 자네가 혹시 요즘
경아랑 이야기 나누는 친구인가?"




 "예..옛!"




 나는 고개를 들어 편의점 점원을 바라보았는데, 알고보니
유니폼 가슴 언저리에 있는 뱃지엔 점잠이라고 씌여있었다.
예상되는 나이는 40대 중반에서 50대 초반이었고,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두 눈동자.. 어디서 많이 봤는데..




 "허허. 젊은 친구가 이런 아저씨를 뭘 그리 빤히 쳐다보나?"




 "죄송합니다. 실례했습니다."




 "괜찮네. 예의바른 친구로구만."




 "그런데.. 저 혹시 경아씨와는 무슨 관계이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흠.. 난 경아의 삼촌되는 사람일세"




 그분의 말을 듣자마자 난 옷매무새를 급히 다듬고는 꾸벅 
고개를 숙여 정중히 인사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저는 경아씨 아랫 집에 살고있는 28살
최 민혁이라고 합니다. 현재 이 근처에 회사를 다니고 있고,
저희 가족 관계로는.."




 "됬네..됬어.. 그만하게"




 크흠! 나도 모르게 너무 긴장한 탓에 주저리주저리 말이 너무
많았다. 나는 말을 줄이고 삼촌분의 말씀을 경청했다.




 "젊은 친구이니 이해하리라 믿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네.
이 이상 우리 경아에게 접근하지 말아주게."




 "..."




 갑자기 떨어진 삼촌분의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씀에 나는 어안이
벙벙해 딱히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하다가 삼촌분의 뒤이어진 말씀에
일단 자리를 비킬 수 밖에 없었다.




 "자네. 이만 계산 끝났으면 비켜주게 다른 손님들이 기다리시잖나."




 "..."




 나는 일단 자리를 비키고는 묵묵히 계산을 하고계신 삼촌분께 
말씀드렸다.




 "편의점 앞에 있는 파라솔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삼촌께서는 내 말을 들으신건지 못들으신건지 묵묵히 계산을
계속하셨고, 나는 말씀드린대로 편의점 앞 파라솔에서 조금씩
기분나쁘게 내리고있는 비를 바라보며 여러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4~5시간이 지났을까. 복잡한 상가거리가 아닌 이 편의
점은 자정이 다 되어가자 손님들이 하나 둘 줄어들기 시작해
이제는 거의 찾는 손님이 없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깊은 생각에
사로잡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잊은 채 어둑해진 바깥 풍경
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뒤, 편의점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딸랑. 철컥.




 음? 나는 종소리 뒤에 들려오는 문을 잠그는 소리에 뒤돌아봤고,
뒤에는 경아씨의 삼촌께서 유니폼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채
간단한 안주거리와 맥주 2캔을 가지고 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에 의아해진 나는 물었다.




 "가게는 어찌하시고.."




 그러자 삼촌께서는 푸근한 미소를 지으시더니 말씀하셨다.




 "내가 점장인데 뭐 어떤가? 그리고 아무리 맥주라도 빈 속에
마시면 몸을 해친다네."




 그러면서 삼촌께서는 가져오신 오다리 두 봉지와 믹스 땅콩
한 캔을 따서 테이블 중앙에 가져다 놓으셨다. 그리고는 "좀 
들게" 라고 하시며 맥주 한 캔을 나에게 주셨다. 우리는 한동안
오징어와 땅콩, 그리고 비로 인해 출렁이며 춤추고있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를 안주삼아 말 없이 맥주를 홀짝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삼촌께서 먼저 입을 여셨다.




 "경아가 좋은가?"




 "예."




 "흐음..그래.."




 나는 망설임없이 대답했고, 삼촌께서는 잠시 생각하시더니
다시 한 번 물어보셨다.




 "자네나 경아나 분명 적은 나이가 아닐세. 그건 알고있는가?"




 "예. 알고있습니다. 요 며칠간 경아씨와의 연락을 통해 제 마
음의 확신을 얻었습니다. 저는 경아씨와 진지한 만남을 가지고 
싶습니다."




 "흐음.."




 삼촌께서는 이후 또 다시 한참을 고민하셨고, 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자꾸만 타들어가는 목구멍을 맥주로 달래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난 뒤, 삼촌께서 입을 여셨다.




 "요즘들어 경아가 부쩍 밝아진 걸 느낀다네. 티를 내지않으려
애쓰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이겠나. 난 그 아이를 낳을 때부터
지켜봐왔는데 말일세."




 "음.."




 솔직히 말해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경아씨가 나 때문에 기분이 
좋다니..




 "그런데 말일세. 내 자네에게 질문을 하나 해도 될까?"




 "예."




 "흐음.. 자네는.. 오직 가슴속에만 미소를 품고 살아갈 수 있겠나?"




 "그게.. 무슨.."




 " 자네. 우리 경아가 왜 항상 마스크를 쓰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그리고 이어진 삼촌의 말씀은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경아씨의 마스크는 중학교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경아씨는 남녀공학인
중학교를 다녔는데 어릴 때에도 지금의 미모는 숨길 수 없었던 모양이다.
주변의 많은 남학생들은 경아씨를 따랐고, 지금과 달리 밝고 명랑했던
경아씨는 많은 남학생들 사이에서 재밌고 활기찬 학교 생활을 하였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질투하고 시샘하던 여중생 한 무리가 경아씨를 중학교
시절부터 줄곧 괴롭히기 시작하였다. 이후. 그 괴롭힘은 도를 지나쳐 결국
사고가 나고 말았다. 여중생 무리가 경아씨를 3층 높이의 창문에서 밀어
떨어트려버린 것이다. 그리고 경아씨는 떨어지는 순간 여중생 무리의 떠드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웃는게 너무 역겹고 재수없다는 소리를.. 얼마 뒤, 병원
응급실에서 깨어난 경아씨는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녀는 더이상 밝지
않았고, 활기차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그녀는 점차 회복되었고 서서히 예전의 모습을 찾아가는 듯 했다.
하지만 언제나 변함없는 점은 그녀의 웃음에는 미소가 없었다. 그녀가 아무리
활짝 웃는다 해도 그녀의 얼굴에는 오직 눈웃음만이 머물렀고, 그녀의 입은 
아름다운 미소를 피어내지 못하고 굳게 닫혀 있었다. 이 부분을 염려한 경아씨의
부모님과 삼촌은 의사에게 진단을 요구했다. 그 결과 의사의 판단으로는 정신적인
충격으로 인한 일시적인 쇼크현상이라고 말했는데. 그 의사는 낮은 함숨을 몰아쉬고는
다시 환한미소를 언제 되찾게 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이후 경아씨는 웃고있지만 
입으로는 밝게 미소짓지 못하는 자신을 다른 사람들이 놀릴까 두려워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고, 현재까지도 그녀의 마스크는 그녀의 생활이 되어 있었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를 듣고 조금 멍해져있던 나를 삼촌분의 목소리가 다시금 깨웠다.




 "내가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말은 없네. 결심을 어느 방향으로 굳히건 그건 오직
자네 몫일세. 부디 어느 쪽으로든 우리 경아를 상처입히지 말아주게."




 "..."




 "그럼 천천히 생각해보게."




 나는 삼촌의 말씀에 끝내 대답하지 못했고, 삼촌께서는 다시 편의점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일을 보셨다. 그리고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편의점 앞 파라솔에 앉
아있던 나는 한참 동안을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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