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女 >



 그에게서 자주오던 메세지가 요즘엔 자주오지 않고 있다.
무슨 바쁜 일이 있는건가.. 걱정되는 이 마음을 다시 다잡는다.
나한테 있어 그 사람이 뭐라고 이렇게 걱정하는 건지.. 혼란스러
워하는 내 자신이 너무도 우습다.




 '일 구해야지..'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 속에서 제대로 된 일도 못하고 나이만
늘어가는 편의점 알바생 여자. 거기에 평번한 사람들처럼
환히 웃지도 못하는 이런 여자를 그 누가 좋아할까.. 이런
자괴감이 또 다시 엄습한다. 그가 나에게 영화를 보자고, 식사를
함께하자고 여러번 데이트 신청을 할 때마다 나에겐 항상 자괴감이
엄습해왔고 나는 매번 그것을 이겨내지 못했다. 그와 연락해온 짧은
시간 동안을 회상해본다. 여러번의 데이트 신청과 여러번의 거절.
그러면서도 천연덕스럽게 이어지는 그의 데이트 신청..




 "킥."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의 입가는 미동도
없을테지만, 그를 떠올리면 항상 눈가에 웃음 꽃이 피어오른다.




 "하아.."




 한숨과 함께 현실로 돌아온다. 요즈음 뜸해진 그의 연락.




 '그럴만도 하지..'




 아무리 친절하고 마음 넓은 남자라도 분명 자존심이 있기 마련이다. 아니,
그런 사람이라면 오히려 자존심이 더 강할수도 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는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초조해졌다.




 "어쩌지.. 연락이나 한 번 해볼까?"




 꾹.




 나는 휴대전화를 켜고 그에게 문자를 보내려다 멈칫했다.




 "근데 뭐라고 보내야 해? 음.."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결국 '오늘은 날씨가 화창하네요'라고 문자를 보냈다.
나는 언제부터 그를 내 마음 속에 조금씩 들여놓기 시작했던걸까. 첫 만남 때
부터? 그럴리 없다. 평소에 자주오던 연락 때문에? 설마..




 "아마도.. 날 배려해 주었기 때문이겠지."




 기억났다. 그는 나의 집에 와서도 무례한 행동이나 언사를 일체 사용하지 않
았다. 게다가 나를 위해 내 마스크에 대해서도 묻지 않았다. 그 땐 정말 기분이
좋았다. 보통 나를 만나면 첫 질문은 마스크를 왜 쓰고 있느냐로 시작해서 결국
끝에는 이유를 알던 모르던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해 버리고 만다.
가끔은 이런 걸로 놀림받았던 적도 있었기에 그와의 만남은 특별했다. 그런면에서
볼 때,




 '그는..따뜻한 사람이야..'





 갑자기 그가 너무나 보고 싶어졌다. 몇 주 동안 못 본 탓도 있겠지만, 그에 대한
내 마음이 커진 탓이 훨씬 더 크다.




 철컥! 탁!




 나는 간단한 평상복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그리고는 바로 아랫 집을 향해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탓. 탓. 탓




 그의 집 문앞이다. 남의 집 문 앞에서 이렇게 떨려보기는 처음이다. 그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내가 어디서 이런 용기가 났는지 잘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
만틈은 어릴 때의 활기찼던 나로 돌아온 것 같다.




 "흐으읍..휴우.."




 크게 쉼호흡을 하고 벨을 누른다.




 띵동.




 "..."




 꿀꺽!




 마른 침을 삼킨다. 처음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할까? 벨을 당당히
눌러놓고 오만가지 생각들이 내 머리속을 헤집어 놓는다.




 "..소식이 없네"




 예상 외로 그는 방안에 없었다. 나는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오후 3시 오늘같은 주말에 그는 어떤 것들을 했을까. 나는 비로소 내가
그에 대한 많은 부분을 모르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나는 자취를 하고있는 빌딩을 빠져나와 근처에 있는 시내를 걸었다. 어떤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그냥 걷고싶어 걸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그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 지나갔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어. 다 똑같아."




 요즘들어 자신감이 생긴 것 같았는데..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역시 나는 안
될것같다. 지금 걷고 있는 이 거리와 많은 인파가 조금씩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그동안 그에 의해 기분이 서서히 좋아졌던 탓일까. 그가 없으니 좋았던 기분에
서서히 무채색의 두려움이 뒤덮히기 시작했다.




 탁탁! 또각또각! 부르르릉..




 멍해있던 나의 귀에 비로소 주변의 소음과 잡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무서워..'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대도 모두가 나를 보는 듯하다. 주변의 통화하는 소리.
수다떠는 소리. 웃음소리마저 모두 날 비웃는 소리로 들리기 시작했다.




 '가야해. 어서..'




 나는 뒤돌아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어차피 나의 도피처는 나의 자취방
외에는 없지만 난 그걸로 만족한다.




 '어서 빨리.. 돌아가고 싶..'




 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보았다. 나에게 따듯함을 보여준 그. 그는 지금
나의 앞에 있는 횡단보도 건너의 커피숍에서 어떤 아름다운 여자와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는, 굉장히 진지했고, 편안해 보였다.




 '대체 난 뭘 기대한거지?'




 내 스스로가 너무 바보같아 보인다. 오랜 외로움에 지쳐 작은 관심을 확대해석
하다니.. 그를 보고있던 나의 마음은, 그가 주었던 따듯함은, 그가 보이는 커피숍
아ㅠ 거리에서 차갑게 식어갔다. 순간, 커피숍 안의 그가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는 굉장히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왜 당황하는 거지?'




 그리고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서 나를 향해 뛰어오려 했다. 나는 왠지 모르게
뒤돌아 뛰어야만 할 것 같았다. 수 많은 드라마의 여 주인공들을 보며 멍청하다
생각하고 답답했는데.. 막상 현실로 다가오니 나는... 나의 집을 향해 도망치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아..'




---




 < 男 >




 탁. 탁. 챠르륵. 틱.




 방을 나서기 전,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손목에 찬 시계를 스윽하고 한번 쓰다듬는다.
그리고는 현관 문 손잡이를 잡고 윗 천장을 한번 바라보고는 씨익. 웃고 문을 열고서
방을 나선다.




 현재 시간은 호우 2시. 나는 지금 집 앞 시가지에 있는 어느 한 커피숍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반 정도는 설레고, 나머지 반 정도는 오묘한 마음이다.




 딸랑.




 커피숍 문이 열리고 그녀가 들어온다. 그녀는 나를 찾는 듯, 카페 내부를 스윽하고
한번 둘러보더니 금새 나를 찾아내고 환히 웃으며 다가와 내 앞에 앉았다.




 "오래 기다렸지? 미안. 차가 좀 밀렸어."




 "아냐. 나도 방금왔어. 오랜만인데 그동안 더 이뻐졌네?"




 "왠일로 칭찬이야? 후훗"




 내 앞에있는 여자. 내가 커피숍에서 초조해하며 기다린 이 여자는 나의 초등학교 동창
여유진 이다. 유진이는 나와 초등학교 때 부터 마음이 잘 맞아 둘도 없는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기본적으로 이쁜데다가 똑똑하기까지 해 유진이는 정신과 의사가 된 현재, 여러
모임과 소개. 그리고 자신의 일로 인해 눈 코 뜰새없이 바쁘게 살고 있다. 그렇기때문에
가끔 열리는 동창회가 아니고서는 볼 일이 거의 없었는데, 이번에는 나의 부탁으로 한달음에
달려와 주었다.




 주문한 커피가 나오고 유진이와 근황을 얘기하던 나는 더 이상 참지못하고 유진이에게
물어보았다.




 "내가 부탁한건 어떻게 됬어?"




 "후훗. 어지간히 급한가 보네?"




 "응. 그러니깐 빨리 좀 말해줄래?"




 "음.. 알았어. 그러니까.."




 나의 진지한 태도에 유진이는 웃음기를 거두고는 성심성의껏 나의 물음에 대답을 해 주었고,
나는 한동안 유진이의 말을 들으며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말 한 마디, 한 글자 조차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유진이의 말이 끝나갈 무렵 나는 유진이의 말 속에서 작은 희망이
보이는 것을 느끼자 머릿속이 환해지는 경험을 하며 자신감이 생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긴장으로 인해 말라붙은 목을 축이기 위해 커피 잔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나는 멀리 횡단보도
건너에 서서 슬픈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경아씨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슬픈 얼굴인거죠?'




 나는 직감적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벗어 둔 외투를 챙기며 앉아있는 유진이에게
다급히 말했다.




 "정말 미안한데, 나 먼저 일어나 봐야 할 것 같아"




 이에 창문 밖을 바라본 유진이는 피식하고 오묘한 미소를 짓더니
 나에게 매력적인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어서 가. 여자를 놓치는 남자는 매력없는 법이거든."




 "응? 어.. 엇!"




 탓.탓.탓. 딸랑!




 나는 유진이의 말에 창문 밖을 바라보았고, 뒤돌아 뛰어가는 경아씨를 볼 수 있었다.




 제길.. 난 왜 이 모양인건지..




 "유진아 고마워! 나중에 꼭 연락할게!"




 한 차례 폭풍이 휩쓸고 간 카페 안에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모락모락 김이나는 따듯한
커피를 홀짝이고 있는 아름다운 유진의 혼잣말 만이 공허히 맴돌았다.




 "대체 어떤 여자길래 민혁이가 몇 주 동안을 밤낮 설쳐가며 고생한걸까?  대체 어떤 여자이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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