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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달렸고, 나도 달렸다. 나는 애타게 그녀를
불렀지만 그녀는 그저 말 없이 달려갔고, 나는 그녀를
붙잡기 위해 더욱 빨리 뛰었으나 갑자기 들려온 그녀의
말에 더이상 나는 그녀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더이상 가까이 오지 마세요."




 그리고 그녀는 말 없이 걸었고, 나 또한 그녀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말 없이 걸었다. 그녀는 걸으며 눈물을 소맷
자락으로 훔치는 듯 그녀의 양 손은 위로 아래로를 계속해서
반복했고, 그녀의 손이 움직일 때 마다 마술에라도 걸린 듯
나의 마음과 발걸음은 조금씩 조금씩 무거워져 갔다.




 얼마나 걸었을까. 그녀와 내가 살고있는 자취건물이 보일 때
즈음엔 하늘은 주홍빛 색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시간이지나
그녀의 길어진 그림자가 내 발 끝에 닿으려 할 즈음 그녀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탓. 탓.




 나는 그녀를 따라 건물로 들어갔고, 그녀는 그녀의 방이 있는
3층까지 한마디 말도 없이 묵묵히 올라갔다. 3층에 도착하여
코너를 돌아 그녀의 집 현관문이 보였다. 그녀는 연신 눈물을
훔치며 열쇠를 찾는 듯 가방을 뒤적이더니, 곧 열쇠를 찾아 문을
열고 그녀의 집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어쩌지..'




 나는 그녀의 현관문 앞에서 어떤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녀의 구두 벗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녀도 현관 앞에서 꼼짝않고 있는 것일까?




 "풋."




 문득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예상하지 못할 행동을 했다.




 턱.



 "나는 참 행복한 놈이에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날 기다려주고 있으니
까요.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구요.. 항상 고마워요."




 나는 그녀의 현관문에 등을 기댄 채로 그녀가 내 말을 들어주길 바라며
말했다. 효과가 있던 것일까? 내가 기댄 차가운 현관문 뒤로 그녀가 등을
기대는 것이 느껴졌다. 단지 그녀가 기댓을 뿐인데, 나는 차가운 현관문을
그녀의 온기가 뚫고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그녀를 느낄 때
현관문 안쪽에서 약간 코맹맹이의 훌쩍이는 귀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훌쩍. 추..한 모습 보인 것 죄송해요. 이제 그만 가보세요. 더 이상 창
피하기 싫어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 밑바닥에는 그 동안의 외로움과 쓸쓸함 그리고
짙은 푸른색의 고독이 조심스레 묻어나고 있었다.




 '그렇게도 외로웠나요?'




 나는 속으로 너무나 안타까웠지만 애써 밝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저.. 너무 많이 걸었는지 목이 마르네요. 물 한잔만 먹고 갈 수 있을까요?"




 "저번에도 그러더니.. 그건 민혁씨 집에서.."




 "부탁할게요."




 나는 그녀에게 담담하지만 간곡하게 부탁했고 그녀는 또 한동안 말이 없었다.
조금 뒤, 그녀의 구두 벗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은 열려있어요. 그리고!"




 "?"




 "..딱 한잔만이에요."




 빙긋.




 그녀의 귀여운 말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피어났다.




 "그럼. 실례할게요."




 끼익. 탁.




 나는 현관문을 열고 그녀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방은 예전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신발을 벗고, 그녀의 방 겸 거실에 있는 그녀의 
침대에 터억 걸터앉았다. 평소에는 이렇게 무례하지
않지만 오늘은 어쩔 수 없다. 조금 기다리자 그녀는
한 손에 물컵을 든 채로 거실로 왔다. 그녀는 내게
조용히 물컵을 건넸고 나는 컵을 받자마자 입도 대지
않고 바로 옆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그녀는
그녀가 쓰고있는 마스크 위로 고운 아미를 찡그리더니
나에게 말했다.




 "허락없이 제 침대에 앉는 것도 그렇고. 물도 그렇고.
예의 없으시네요"




 그녀가 이렇게 화도 낼 줄 알았던가? 나는 그런 그녀가
재미있어졌다. 화를 내는 모습도 어찌나 예쁜지 나는 그녀를
더 화나게 만들고 싶어졌다.




 "음.. 그래서요?"




 그녀는 퉁퉁부은 두 눈을 부릅뜨며 미간을 찌푸리더니 나에게
조금 큰 소리로 말했다.




 "집에서 나가요. 당장"




 이크, 그녀의 행동을 보자 나는 조금 미안해졌다. 이러려고 한 게
맞긴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화를 내니 마음이 아팠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바라보고 말했다.




 "나갈까요?"




 그녀는 나의 말에 어처구니 없다는 시선으로 날 바라보고는 말했다.




 "네."




 저벅.




 "나가라고요?"




 "..."




 나는 그녀가 대답하자. 그녀에게 한 걸음 다가서며 말했고 그녀는
내 행동에 조금 당황했는지 약간 긴장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저벅.




 "정말.. 나갈까요?"




 "..."




 그녀와 나의 거리는 애초에 5걸음 차이. 나보다 키가 조금 작은
그녀는 어느새 나를 조금 올려다보고 있었고, 그녀는 나를 보며 조심스레
대답했다.




 "..네"




 저벅.




 "..보고 싶었어요."




 "..."




 나는 한 걸음 더 다가서며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말했고, 내가
말하는 순간 나는 그녀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말을 잇지못했고 나는 그녀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서며 말했다.




 "외삼촌께 들었어요. 경아씨의 마스크."




 "...!"




 그녀는 놀란 듯 토끼 눈이 되었다가 내가 말을 이어가자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경아씨. 남들과 다른건 별 문제가 되지 않아요. 그건 나쁜게 아니에요. 다들
경아씨에게 나쁜 마음으로 그러려는게.."




 "듣기 싫어요!"




 그녀는 갑자기 소리치며 말했고, 일단 나는 그녀의 말을 들었다.




 "민혁씨가 알아요? 안다구요? 다른 사람들과 달라도 별 문제가 안된다구요? 그리고
나쁜 마음으로 그러는게 아니라구요? 그럼 왜 내게 손가락질을 하는 건가요? 제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맘 편히 웃을 수도 없는 건가요? 모든게 제 탓인가요? 저 혼자 다 짊어지고
살아야 하나요? 왜 이렇게 불공편한 거죠? 저는 왜.."




 턱.




 나는 그녀의 손을 강하게 붙잡으며 그녀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빙그레 웃어보이고
잠시 뒤로 돌아 내 왼쪽 눈동자에 있는 렌즈를 빼내고 작게 한숨쉰 뒤, 다시 뒤로 돌아 그녀를
마주보았다. 그 순간 그녀는 흠칫놀라며 뒤로 한 발짝 물러서고는 말했다.




 "민혁씨.. 그.. 왼쪽 눈은..?"




 "흉하죠? 좀 징그럽기도 하구요. 하하! 이왕이면 파랑이나 노랑처럼 예쁜 색이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그녀는 짙은 회색 빛의 내 왼쪽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했고, 
나는 그녀에게 농담을 건네며 그녀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죄송해요.. 조금 놀라버렸어요.."




 "솔직해서 좋네요. 경아씨 제 얘기좀 들어볼래요?"





 .


 .


 .





 나는 그녀에게 내 모든걸 털어놓았다. 절대 자랑이라 할 수없는 숨기고 싶은 불편한 진실들. 내
자신조차 창피하여 고개들 수 없는 과거들.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나온 회색의 왼쪽 눈과 친부모에게
버려져 지금의 부모님께 구해져서 키워진 일. 어릴 때부터 계속된 차별로 세상 모두를 미워하고 나만
알고 살아온 일. 그러던 중 나를 낳은 친어머니는 양쪽 두 눈이 모두 회색이었고 후에 나를 찾아와
나에게 이유없는 용서를 구한 일. 이후 평생 한 쪽 눈에만 렌즈를 끼고 살아야하는 일 등. 나는 이 모든
이야기를 그녀에게 담담하게 독백하듯 말했고, 그녀는 나의 말 중에 공감하는 이야기에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어두운 이야기에는 눈물이 고여가며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들어줘서 고마워요. 다름은 결코 나쁜게 아니란 걸 알아주었으면 해요."




 "..."




 "음.. 제가 연락을 못한 그 2주동안 제가 어디있었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저는 그 동안 경아씨 무척이나
그리웠는데."




 "..몰라요"




 그렇게 말하면서 눈을 피하는 경아씨는 너무나 귀여웠다. 나는 그녀에게 후후 웃으며 말을 이었다.




 "2주 동안 열심히 찾아다녔어요. 어떻게하면 경아씨 얼굴에 활짝 웃음꽃이 필 지를 말이에요."




 "그건 이미 의사 선생님이 불가능하다고.."




 "경아씨?"




 나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팔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양 손으로 부드럽게 감쌌다.




 "경아씨가 마주보고 있는 제 눈. 이 눈은 날 때부터 바뀌지 않는 색이고 이걸 오드아이라고 불러요.
제 눈은 정말 고치기가 '불가능'해요. 하지만.."




 나는 잠시 말을 끊고는 그녀의 마스크를 살짝 풀어내었다.
 그녀의 제지가 있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풀어버린 뒤 말을 이었다.




 "경아씨의 미소는 후천적이고 정신적인 충격에 의한 증상이기에 고치기 힘들 수 있지만,
 절대 '불가능'하지 않아요"





 나의 말에 그녀는 놀란 토끼눈으로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전 2주동안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정신과 의사들을 만나고 다녔어요. 그 덕분에 경아씨가 나아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죠. 그리고 외국에서도 실제 고쳐진 사람들도
 꽤 되더라구요. 음.."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아까 카페에서 만난 그 여자있죠? 그 여자는 여유진이라는 제 초등학교 동창이에요. 지금은 우리나라
정신 의학계에 떠오르는 신예랄까요? 하하! 어쨋든 저는 그 친구에게 제가 조사한 자료를 정리해서
보여주고 실제로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야 경아씨의 증상이 거의 완치될 수 있는지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뭐라는 줄 알아요?"




 제일 중요한 타이밍에 말을 끊은 탓인지 그녀는 약간 볼이 부풀어오르고 입이 뾰루퉁하게 나와 노골적으로
불만을 나타내고 있었다. 귀여운 여자라니깐. 그러던 그녀가 더 이상 참지못하고 물었다.




 "그래서.. 얼마나 걸리는데요?"




 "유진이가 말하기로는 실제로 치유된 환자들을 봤을 때, 완치까지 걸리는 시간은.."




 와락!




 나는 말하는 도중 그녀의 어깨를 잡고있던 손에 힘을 주어 그녀를 끌어안아 버렸다. 그녀는 놀라 흡!하는
귀여운 소리와 함께 내 품에 안겼고 모기만한 목소리로 뭐하는 거냐며 반항했다. 나는 그런 그녀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 완치까지 걸리는 시간은 모두 다르대요. 왜냐면 경아씨의 병은 마음의 병이라 경아씨가 진심으로 행복해져야
치유된다고 하더라구요. 재미난 여담이지만 커플인 사람일수록 더욱 빨리 증상이 완화된다는 통계치가 있어요.
재밌지 않나요?"




 "..뭐에요 그게.."




 그녀는 또다시 모기만한 목소리로 말했고,
 난 그녀를 나의 품에 더욱 끌어안고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 동안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앞으로 다시는 기다리게 만들지 않을게요.
 그리고 경아씨의 미소. 제가 찾아드릴게요. 
경아씨는 저만 따라와요. 그래줄 수 있어요?"




 그렇게 말하며, 나는 끌어안고 있던 그녀를 잠시 놓아주고, 그녀의 어깨를 양 손으로 살며시 감싸며, 그녀의 얼굴을 마주
보고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윽고 그녀의 입에서 환한 미소가 피어오르지는 못했지만 그녀의 눈가에는 눈이 부실듯한
아름다운 눈 웃음이 피어오르며 그녀는 활기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그녀의 방 안 창문너머 주홍빛으로 붉게 물든 하늘을 배경으로, 그녀 또한 붉게 타오르듯 빛나고 있었고, 환하게 대답하는
그녀의 아름답고 큰 두 눈동자 속에서 나는 그녀의 맑고 싱그러운 '미소'를 볼 수 있었다.




 [ Smiless 완결. ]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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